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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를 위한 자료

파라노이아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당신을 위한 트러블슈터 속성 코스

 

새삼스럽지만, 파라노이아라는 룰은 (몇몇 예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한국에 정발된 다른 어떤 룰보다도 이질적입니다. 다른 일반적인 룰들에서 통하는 상식이라는 것은 파라노이아로 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보가 되고 말지요. 그렇게 때문에 다른 룰에 익숙한 플레이어의 경우 파라노이아라는 룰에서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잦습니다. 세션 중에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거나, 파라노이아라는 룰의 본질을 뒤흔드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그런 분들에게 받은 질문을 바탕으로 파라노이아의 특수성, 아니면 파라노이아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에게 드리는 팁, 뭐 그런 걸 적어볼까 합니다.

 

※ 사실, 이런 문제는 플레이 전에 파라노이아가 어떤 룰인지 제대로 설명해두기만 했다면 80% 정도는 해결됩니다. 정확한 규칙을 플레이에게 가르쳐줘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런 부분은 적당히 플레이어가 눈치로 해결하도록 놔두는 룰이고... 다만 '인공지능이 지배하고 있는 미래 벙커도시에서 인공지능이 주는 임무를 해결하는 룰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파라노이아를 그런 룰이라고 생각했다면 이걸 한 번 보고 오세요. 하지만 때로는 필요한 설명을 마쳤는데도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글을 보면 대충 해결될 테니까요.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있다면 댓글로 달아 주시면 답변해드리는 것과 동시에 글의 내용으로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Q1. 다른 플레이어들이 임무 수행이나 스토리 진행은 뒷전이고 서로 싸우려고만 해요. 원래 이런 룰인가요?

A1. 마스터로부터 어떤 설명을 들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파라노이아는 임무 수행이나 스토리 진행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룰은 아닙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뭔 짓을 하던 임무는 대충 실패하고, 여러분은 누가누가 반역자인가를 가려내는 일에 집중하게 될 거거든요. 사실, 어떨 때는 캐릭터들이 임무 장소에 도착하는지 아닌지도 별 상관이 없을 때도 존재합니다.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겠다는 마음은 버리고, 비밀 결사의 지령을 수행하거나 그냥.. 하고 싶은 걸 다 해본다는 마음으로 세션에 임하세요. 어차피 대부분 단편일 것이고... 그렇다고 대놓고 임무에 비협조적이라면 캐릭터의 목숨이 곤란해질 겁니다. 임무 태만으로 반역자로 몰릴 수 있거든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척' 하면서 개인의 영달만 추구하는 게 바로 파라노이아에서 플레이어들에게 권장하는 바입니다.

 

 

Q2. 사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서로를 죽이려고 드는데, 왜 이러는 건가요? (=개수작을 하는 목적이 뭔가요?)

A2.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캐릭터를 죽이려고 드는 이유는 디브리핑(임무가 끝나고 모두의 잘잘못을 따지는 단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디브리핑에 도달하기 전에 어떤 시민의 클론이 모두 소모된다면, 디브리핑에서는 임무 실패의 모든 잘못을 이미 사망한 시민에게 떠넘기면 되기 때문에 살아남은 시민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생존 가능성이 증가합니다. 죽은 시민이 반대 증언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꼭 다른 시민을 죽이지 않더라도 디브리핑에서는 다른 시민의 이전 클론이 한 반역행위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뒷공작을 통해 다른 시민이 반역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저 시민은 임무를 지속적으로 방해한 반역자였습니다!'라고 입을 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라노이아 세션에서는 뒷공작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때로는 아주 작은 뒷공작이라도 상대가 끝까지 발견하지 못하면 엄청난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죠. 주머니에 몰래 넣어둔 공산당 당원증이라던가.

 

 

Q3. 그냥 모든 플레이어들이 서로 협력해서 임무를 잘 수행하면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닌가요?

A3. 파라노이아를 처음 해 보시는 플레이어들은 종종 그렇게 생각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임무의 성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임무 자체에 모순적인 구조가 있든, 임무가 내려온 원인이 단순히 컴퓨터님의 착각이었든, 캐릭터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난이도의 임무였든, 연구개발부에서 준 시험 장비가 폭발하든 간에 임무는 실패, 혹은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추궁할 대상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플레이어들이 모두 협력해서 임무를 (그나마) 잘 끝낸다고 해도, 여러분의 캐릭터에게 주어지는 이득이라 할 만한 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비밀 결사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반역 행위를 저질러 보상을 타내는 게 캐릭터에게는 더 이득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라노이아는 그런 식으로 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세션 내내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협력적인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는 다른 룰을 하세요.)

 

 

Q4. 상대 주장에 반론하는데도 계속 반역자로 지목당해 죽어요... 파라노이아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룰인가요?

A4. 완전히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네요. 하지만 이건 알아 두셔야 합니다. 반역자로 몰리는 경우 당신을 고발한 시민의 목적은 당신이 해명을 하다가 말실수 따위를 해서 확고한 반역자로 몰리는 거지, 진지하게 당신의 해명을 듣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다른 시민이 당신을 반역자로 지목했을 때 그 시민의 주장에 해명을 늘어놓는 것은 그다지 좋은 수단이 아닙니다. 어쨌든 상대는 당신을 반역자로 계속 몰 거기 때문이죠. 당신이 무고했다면 역으로 자신이 공격을 받게 되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우선 당신을 반역자로 판단하는 주체(컴퓨터님이나 고위 등급의 시민들)에게 당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 주체에 대한 끝없이 이어지는 아첨과, 충성심의 표출, 그리고 그 주체가 인간이라면 약간의 뇌물도 곁들인다면 마음을 돌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겁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다른 시민의 잘못을 문제삼는 것도 좋겠습니다. 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방법이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서로가 서로의 적이라는 것은 세션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지 않았나요? 결국 증언과 증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얽혀서 누가 제일 잘못하였고 누가 반역자로 마땅한 인물인지 마스터가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면 이상적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반역자로 처형당한다 해도 한두명 정도는 당신과 운명을 같이할 겁니다.

 

 

Q5. 일방적으로 계속 반역자로 몰릴 때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A5. 앞 질문의 답변에서는 주로 말빨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을 제시했었죠. 하지만 반역자로 몰리고 있는데 거기에 대처할 말빨이 부족하다면, 그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여러 대안들이 존재합니다. 하나, 당신이 본격적으로 반역자로 몰리기 전에 상대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데엔 격투, 에너지 병기, 투척 병기, 폭파 등 폭력 스킬의 세부분야들이 유용합니다. 둘, 도저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을 일으켜서 당신에 대한 고발이 흐지부지 끝나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판기가 폭발하거나, 로봇이 갑자기 폭주해서 여러분을 공격해오기 시작한다거나, 정전이 일어나거나, 장비 담당관이 소지품 검사를 실시한다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다른 시민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데엔 기계공학, 전자공학, 환경공학 등 하드웨어 스킬의 세부분야나 로봇 프로그래밍, 운영체제, 해킹 등 소프트웨어 스킬의 세부분야들이 유용합니다. 여러분의 MBD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셋, 상대의 주장에 완벽히 반대되는 증거를 만들어 내서 상대를 역으로 공격한다. 상대가 멀티코더 기록이나 PDC로 찍은 사진 같은 걸로 당신을 공격할 때 쓸 수 있는 방법이고, 초심자에겐 조금 까다로운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멀티코더 기록을 조작하거나 상대의 PDC를 물리적으로 파괴, 혹은 해킹해서 증거로 들이민 자료를 무력화하는 겁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상대를 무고한 시민을 허위 신고한 죄로 반역자로 몰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엔 손장난, 은닉, 멀티코더 조작, 운영체제, 해킹 등의 몇몇 특정한 세부분야들이 유용합니다.

 

 

Q6. 마스터가 절대로 안전하다고 했던 장비가 폭발했어요... 파라노이아는 마스터의 설명도 믿으면 안 되는 룰인가요?

A6. 파라노이아는 블랙 코미디가 강하게 가미된 룰이기 때문에, 마스터의 서술에도 비꼬거나, 모순적이거나, 거짓말은 하지 않거나 하는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마스터가 연구개발부에서 받은 최신형 실험 장비를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알파 컴플렉스에서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파라노이아는 이런 것들을 플레이어들의 '눈치'에 맡기는 룰입니다. 눈치가 없었다면? 펑. 다음 클론은 잘해주겠지요. 그런 룰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런 감각에 익숙하지 않다면, 마스터에게 "이전에도 이걸 시험한 시민이 있었나요?" 혹은 "이걸 사용한 시민 중에 몇 명이나 생존했나요?"라고 물어보세요. 마스터는 "미안합니다, 시민. 그것은 당신에게 허용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대개는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혹은 "1000명의 이용자 중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행복하지 못한 시민들이었기 때문이겠죠?" (당장 빠져나갈 수단을 찾지 않으면 여러분도 곧 죽을 거라는 뜻입니다) 라고,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줄 것입니다. 

 

 

Q7. 주사위 상으로는 판정에 성공했는데 실패한 것 같은 효과가 났어요. 이럴 수 있는 건가요?

A7. 당연하죠. 파라노이아: 트러블슈터즈는 단순히 주사위 눈이 스킬 실력 이하로 나온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룰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세부적인 룰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마스터만이 세부적인 룰을 알고 세션에 적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요. 마스터가 플레이어에게 판정이 성공하고 실패했는지 알려줄 의무 또한 없습니다. 어쩌면 다른 시민으로부터 방해를 받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여러분은 알 수 없는 어떤 규칙에 의해서 판정이 실패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마스터 마음에 안 드는 선언이었을 수도 있고... 확실한 것은 어떤 경우든 마스터에게 결과를 따질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파라노이아에서 마스터는 룰의 해석에 있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라노이아는 그런 룰입니다.

 

 

Q8. 자주 쓰이는 스킬이 있고 자주 안 쓰이는 스킬이 있는 것 같아요.. 혹시 고를 스킬을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A8. 파라노이아: 트러블슈터즈는 실질적으로 나온 지 15년도 더 된 룰이라서, 아직 룰이 완전히 최적화되지 않았습니다. 2017년에 나온 파라노이아 Red Clearance Edition은 훨씬 직관적이고 버릴 부분이 없는 룰을 사용하고 있지요. 아무튼 파라노이아: 트러블슈터즈에는 자주 쓰이는 스킬이 있는가 하면 특정 상황이나 장소에 가지 않으면 쓸모가 거의 없어지는 스킬들도 있습니다. 이건 스킬을 활용하는 플레이어의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창의적인지, 주요 스킬에 점수를 어떻게 배분했는지 등등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지만, 대체로의 경향이라는 건 존재하더군요.

 

이렇게 하면 여러분의 선택을 일률적으로 만들까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첨/협박/사기극/허세 중 1개순발력 정도는 갖추는 걸 추천합니다. 순발력이 높으면 알파 컴플렉스에서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폭발이라던가.. 폭주 로봇의 습격이라던가에서 살아남기 좋을 겁니다. 다만 레이저는 순발력 따위로 피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다른 시민들의 주머니와 계좌를 털고 싶다면 손장난과 은닉, 미행, 금융체계(크레딧이 전자화폐라면 도움이 됩니다)가 유용하고, 알파 컴플렉스의 시설이나 로봇에 장난을 치고 싶다면 기계공학과 전자공학, 환경공학, 해킹, 로봇/차량 프로그래밍이 유용하고, 약물을 사용해서 농간을 부리고 싶다면 화학공학과 약물요법, 의학 등이 유용할 겁니다. 맡게 되는 MBD가 미리 정해져 있다면 충성심 담당관 - 감시, 행복 담당관 - 약물요법, 위생 담당관 - 위생관리, 장비 담당관 - 장비보수, 통신기록 담당관 - 멀티코더 조작 등이 유용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천에 불과합니다만.

 

 

Q9. 비밀 스킬이 정확히 뭔가요? 도대체 어디에 쓰는 건가요?

A9. 알파 컴플렉스에서 일반적인 경로로는 익히기 쉽지 않은 지식을 나타냅니다. 비일상, 비합리 스킬은 '엄밀히 말해 반역은 아니지만' 일단 수상하다 정도로 몰릴 수는 있습니다. 반면 불건전 스킬은 그런 스킬에 관련된 지식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거나 그런 지식을 습득하는 것 자체가 불법입니다.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말입니다. 몰래 사용해서 안 들키기만 하면 문제없습니다. 비밀 스킬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열람할 수 없는 여러분은 비밀 스킬을 뭘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이 안 올 수도 있을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룰북을 구입해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