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이아 단편 마스터링을 한 3년, 그것도 작년 7월부터는 거의 격주에 한 번 꼴로 하다보니 캐릭터 시트가 꽤 쌓였습니다. 작년 1월부터 지난주 일요일까지, 파라노이아: 트러블슈터즈로 돌린 것만 취합하면 총 164명의 캐릭터가 알파 컴플렉스를 거쳐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한 번 흥미 본위로 데이터를 정리해 봤답니다. 정말 어디까지나 흥미 본위로요.
1. 캐릭터 성별 (젠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파라노이아의 세계관에서 모든 시민들의 육체는 각종 호르몬 억제제/조절제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별 간 차이가 일부 외형적인 특징을 제외하면 거의 없고, 자기가 어떤 성별이라고 생각하든 괜찮고 이에 따른 차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공식 설정입니다. 파라노이아 Red Clearance Edition의 PHB를 보면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요지는 캐릭터를 제작할 때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원하는 젠더를 가지도록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죠. 어떠한 구조적 압력 없이 말입니다. 위 그래프는 전체 164명의 캐릭터의 젠더를 조사한 결과로, 제가 네이버 카페에서 활동할 때 조사한 것과 트위터에서 활동할 때 조사한 것을 따로 집계했습니다. 남성과 여성 이외의 응답(에이젠더, 바이젠더 등)은 모두 기타로 취합했습니다.
두 집단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면, 1) 트위터에서의 '기타' 응답이 카페에서의 '기타' 응답보다 상대적으로 6배 정도 더 빈번하게 나타났다. 2) 트위터에서는 전체에서 '여성' 응답의 비가 카페에서의 '여성' 응답의 비보다 상당히 빈번하게 나타났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2. 서비스 부처
위 그래프는 서비스 부처에 소속된 시민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가장 많은 시민들이 소속된 부처는 녹색으로, 가장 적은 시민들이 소속된 부처는 주황색으로, 나머지는 파란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서비스 부처를 고를 시점에서는 캐릭터메이킹에 영향을 주는 '부처 전문분야' 목록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성능적인 요소가 이 선택에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 그룹으로 나누자면 연구개발부와 환경정신통제부가 상위권, 군사부, 기술지원부, 내무감찰부가 중위권, 동력지원부, 생산운송배급부, 중앙처리부가 하위권이라 할 수 있겠군요. 이로써 기술지원부는 동력지원부와의 라이벌 대결에서 승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비밀 결사
제 세션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자신이 속한 비밀 결사를 선택할 수 있어, 이를 그래프로 정리해 봤습니다. 비밀 결사에 속한 시민의 수를 나타낸 것으로, 가장 많이 선택된 셋은 녹색으로, 가장 적게 선택된 다수는 주황색으로, 나머지는 파란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편 제 세션에서의 하우스룰로 인해, 일루미나티는 무조건적으로 다른 결사에 잠입하도록 되어 있어 위 그래프에 쓰여 있는 시민 수 총합은 전체 시민 수 총합인 164명보다 최소 16명은 많을 것입니다.
'폭발! 파괴! 즐거움!'을 최고 가치로 하는 비밀 결사인 데스 레오파드가 가장 많은 시민들의 선택을 받은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딱 봐도 아무 생각없이 난장판만 만들어도 될 것 같은 결사잖아요? 실제로도 그렇고.
일루미나티를 고른 시민이 많은 것은 제가 결사를 선택할 때 보여주는 자료에서 일루미나티가 너무... 일루미나티처럼 설명되어 있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말 그대로 모든 정보가 검열되어 있고 '이 정보는 일루미나티에 들어와야만 볼 수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거든요.
제 관점에서 예상 외였던 것은 FCCC-P를 많은 시민들이 선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리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대부분 '임무를 성공으로 이끌어라.' 정도가 끝인 FCCC-P가 플레이어들에게 영 선호받지 못하리라 생각했거든요. 아무튼, 컴퓨터님이 FCCC-P에 관대한 부분이 있다는 것 때문일까요? 컴퓨터님을 숭배하는 주제에 고해성사라는 행위에 집착해서 스스로 반역 행위를 저지른다는 정신 나간 설정 때문에? 아니면 그냥 광신도 RP를 해보고 싶어서?
한편 별로 선택받지 못하는 결사들로는 돌연변이 이권과 관련된 결사인 초인동맹과 순혈주의자, 조직의 목표나 이상 면에서 약간 애매한 감이 없잖아 있는 신비주의자와 인본주의자, 대놓고 인간 편이 아닌 기계화 연맹, 그리고 (여러 PL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름이 전혀 간지가 안 난다는 컴잘알이 있었네요. 사실 얼마 전까진 초인동맹과 순혈주의자가 2~3명으로 꼴찌를 달렸었는데 최근 3회 세션으로 인해 좀 늘어난 모양이군요.
4. 스킬 점수 (평균)
파라노이아: 트러블슈터즈에는 관리, 은밀, 폭력,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웨트웨어라는 6가지 스킬이 있어서 캐릭터 제작 때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점수를 분배하여 캐릭터가 어떤 방면에 능통하고 어떤 방면에 취약한지를 결정하게 되지요. 위 그래프에는 각 스킬에 분배된 점수의 평균을 내어 나타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비밀 행동이 생명인 파라노이아답게 은밀이 가장 높은 걸 볼 수 있네요. 다른 시민이 뭔가 뒤 구린 짓을 하는지 감시한다던가 상대 주머니를 턴다던가 팀원들을 따돌리고 몰래 빠져나간다던가 하는 게 은밀 스킬에 몰려 있으니 사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은밀 다음이 관리인 것도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고요. 아무렴, '구두 핥기'도 파라노이아의 상징 격인데 이게 빠지면 섭하죠.
폭력,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는 대강 비슷한 편이고, 웨트웨어가 가장 적은 투자를 받았네요. 웨트웨어는 인간의 뇌를 컴퓨터적 관점에서 해석한 뭐라고는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생물에 대한 지식 전반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가령 생명공학이라던가 약학, 심리학 같은 것들 말이죠. 상대적으로 웨트웨어가 잘 선택받지 못하는 이유는.. 웨트웨어에 속한 분야들이 대부분 특정 상황에서만 적용될 법하다던지 너무 높은 등급에게 허용된 정보라던지 해서 실제로 사용하기 좀 애매한 게 다수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직관적이지가 않다는 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웨트웨어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건 아닙니다. 아마도.
5. MBD - 스킬 점수 간 관계?
위 그래프 6개는 각 MBD에 해당하는 시민들이 각 스킬에 얼마나 점수를 배분했는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프의 빨간 선은 4번 문단에서 집계했던 평균 점수고요. 사실 플레이어들이 항상 원하는 MBD를 고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통계의 의미가 좀 떨어지기는 하는데, 그냥 모아봤습니다. 그럼에도 대체로 납득 가능한 경향성을 보인다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가령 통신기록 담당관은 (멀티코더 조작이 있는) 소프트웨어 스킬에 점수를 더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던가, 장비 담당관은 (장비보수가 있는) 하드웨어 스킬에 투자한다던가. 위생 담당관은 (위생관리가 있는) 관리 스킬에 투자... 생각해보니 경향성이고 자시고 할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6. 서비스 부처 - 스킬 점수 간 관계?
위 그래프 6개는 각 서비스 부처에 소속된 시민들이 각 스킬에 얼마나 점수를 배분했는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프의 빨간 선은 4번 문단에서 집계했던 평균 점수고요. 이번에는 조금 극명하게 갈리면서도 각 서비스 부처에 알맞은 결과가 나온 것 같군요.
군사부에 소속된 시민들은 대체로 말빨과 지식을 내버리는 대신 은밀과 폭력을 높여 전투력을 키웠다는 느낌이고, 내무감찰부에서는 특히나 은밀 스킬에 많이 투자했군요. 생산운송배급부는 반대로 폭력에 적게 투자하고 관리, 하드웨어, 웨트웨어에 높게 투자하는 경향이 있네요.
한편 기술지원부와 동력지원부는 기술자들이 주로 소속된 서비스 부처답게 하드웨어 스킬에 점수가 집중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와중에 로봇이나 뭐 그런 것도 다뤄서 소프트웨어가 높은 편인 기술지원부와 달리 동력지원부는 소프트웨어에 영 약한 경향이 있고요. 연구개발부는 역시 행동 스킬 쪽에 취약하고 다양한 지식 스킬 쪽에 높게 투자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중앙처리부는 관리-은밀-소프트웨어 중점적으로, 중앙처리부의 업무가 관료제의 유지와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 성질대로 나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환경정신통제부는 웨트웨어 스킬에 월등히 점수를 높게 투자하는 걸로 보이는데, 아마 약물요법, 심리요법, 암시 등 정신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분야가 웨트웨어 스킬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되네요. 환경'정신통제'부니까 말입니다.
5번 문단과 비교해 보면, 스킬에 배분하는 점수의 경향성은 MBD보다는 서비스 부처에 더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언제나 원하는 MBD로 MBD를 지정할 수 있게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7. 전문분야와 약점분야
모든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제작할 때 스킬 내에서 '특히 더 잘하는 분야'인 전문분야와 '특히 허당인 분야'인 약점분야를 고르게 되는데, 위 그래프들은 각 스킬마다 전문분야와 약점분야로 각각 선택받은 횟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각 스킬별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세 전문분야와 세 약점분야의 경우 선택받은 횟수도 적어 놓았습니다.
대체로 전문분야로 많이 선택받을수록 그 분야가 한 눈에 보기에 도움이 될 법한 분야로 보였다는 것이고 약점분야로 많이 선택받을수록 필요없어보였다는 것이겠지만, 항상 들어맞는 건 아닙니다. 어떤 스킬에서 전문분야를 고르면 반드시 그 스킬 내에서 약점분야를 골라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어떤 스킬 내에서 전문분야로 선택받는 분야의 수가 늘면 약점분야로 선택받는 분야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은밀 스킬이 다른 스킬들에 비해 극단적인 분포를 보이는 것도 이것 때문이고요.
아무튼 많이 선택받은 분야들을 보면 다들 그럴만하다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라노이아의 상징인 아첨, 다른 시민의 수작질을 파악하는 개수작 탐지와 감시, 주머니 터는 데 쓰이는 손장난, 장비 검사 회피용 은닉과 잠입, 단 한 명도 필요없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순발력 등.. 반면에 약점분야로 자주 선택받은 분야로는 사용하기 극히 복잡해 보이는 변장, 보안체계, 차량이 안 나오면 별로 쓸모없을 차량전투와 차량 운용, 장편 플레이 아니면 한두 번 쓰고 말 것 같은 C-Bay(경매장)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네요. 장편 플레이를 진행한다면 많이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 룰 구조상 직관적이고 유용해보이는 분야에 사람이 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신판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판정에 사용할 수 있는 스킬과 세부분야 수를 대폭 줄이고, 하려는 행동에 따라 조합해 쓰게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기엔 신판 룰이 이런 면에서 더 깔끔하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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